몇 달 동안 꿈을 꾸긴 했으나 눈을 뜨면 수증기 날아가듯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을 해내려 마지막 장면을 꼬리잡기 하듯 눈을 감고 떠올려봐도 꼭꼭 숨어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꿈이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무슨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서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이 정확하게 보였다. 어디로 떨어지는가 자세히 쳐다보니 내가 서 있는 건물의 옥상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지상으로 가까워질수록 엄지만한 돌덩이가 옥상에 탁 박혔다. 

 

떨어진 그곳으로 뛰어가면서 '내꺼야. 내가 가질래~'하고 달려가니 그곳엔 검회색 빛깔이 도는 돌판이 박혀 있었다. 다시 하늘 위를 쳐다보니 하늘 한 가운데에 검은 먹구름같은 도너츠가 생기더니 다시금 반짝이는 무언가를 토해내듯 지상으로 펼쳐보내는 게 아닌가. 

떨어지는 것을 자세히 보니 욕조같은 것도 보이고, 우주선의 잔해같은 것들이 지상으로 마구 떨어졌다. 별똥별이 아니라 우주선의 잔해인가? 하는 마음에 호기심이 들었다. 


중간이 기억나진 않고, 지하에 숨겨놓은 철도가 있는데, 그 선로로 비밀무기같은 열차를 몰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비상시에 가는 곳인데, 그 곳에 우주선이 한 척 있단다. 


꿈이 SF다. 

독수리 5형제같은 고전틱한 느낌에 매트릭스와 인터스텔라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이미지다. 

나중에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의 잔해와 미지의 세계에서 온 것 같은 검회색의 빛나는 돌판. 하늘에서 열리는 구멍. 무얼까... 

8년 전에 알게 된 내 생애의 첫 번째 꿈.
여기서의 꿈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꿈에서 겪은 일을 말한다.
그 당시 나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기억하는 한계 내에서 꿈을 되살펴 볼 일이 있었다.

# 나의 최초의 꿈, 그것에 대한 기억

내가 태어난 그 집, 그리고 가족들이 있었다. 

오순도순 가족들인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그 상황을 뒤로하고 마당에 있는 사다리에 관심을 갖는다. 

저 위에 뭔가 있어! 

그 호기심이 나를 그 사다리로 이끈다.

사다리를 올라서니 하늘의 끝자락처럼 구름이 보인다

저 너머에 뭔가 있어.

구름을 뚫고 이어진 사다리를 지나자 똑같은 자리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곳에는 가족들이 없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없었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저 위에 뭔가 있어!

그러나 오르고 또 오르지만 매번 같은 장소였다. 


어느덧, 그 소녀는 사다리를 오르기가 지겹고 지쳤다. 

매번 힘들게 오르지만 같은 장소 똑같은 곳이야. 

그 어린 나이에도 수많은 계단을 오르지만, 

결국엔 끝까지 오르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계단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여기까지야. 

내가 그 하늘 끝 그 곳까지 올라가고 싶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기에 포기하고 싶었다.

다시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나 다시 내려가도 똑같은 그곳이 아니었다.


체념하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그 곳에 내가 그리도 찾던 가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원점인 줄 알았는데, 원점이 아닌 또 다른 곳이었다. 


이것이 나의 첫 기억의 꿈이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꿈 너머에 또 다른 기억이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이것이 나의 현 생애에서의 첫번째 꿈이다.


#1. 공항에서

어디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려고 대기 중이다. 

내게 일행이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저 멀리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기 위한 사람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예전에 알던 김기가 여행 스케쥴을 확인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책 한권씩을 골라서 읽은 후, 그에 대한 감상문을 발표해야 한다고 한다. 

총 100권의 책 중 하나씩 책 이름을 부르면, 그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면 된다. 

잠시잠깐 아는 사람이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돌아보니 내가 고르려 했던 책이 다른 사람이 이미 택한 책이라고 한다. 

스물다섯번째 책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책 제목 역시 기억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단어인 요란 뭐시기~였다. 

나는 그 책만큼은 내 경험에 비추어 잘 쓸 수 있으리란 생각에 김기를 찾아 뛰어간다. 

난 그 책을 선택하고 싶다. 그 책을 이미 선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40대 중후반인 여성이 그 책을 이미 선택했다. 그 책을 선정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난 그 책을 펴들고, 난 이미 그 책을 절반 가량 섭렵했으니, 나와 나누어 하자고 했다. 

그 여성은 그러자고는 말했지만 표정에서는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래 저래 발표 부분을 나누고, 이래 저래 서로가 나눠서 하면 좋은 내용이 나올거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성은 별로 적극적이지가 않다. 

갑자기 그 여성의 표정을 보니, 이미 그 책에 대한 우선권이 그 여성에게 있는데, 나 혼자 고집피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내가 물러서겠다고 말한다. 

같이 나눠서 할 그 여성이 흡족하지 않다면 그건 나에게도 흡족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책만큼은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 여성의 그 태도로 나는 물러선다. 

결국엔 나눠서 할 것이 아닌가보다라고생각하고 만다. 


뒤돌아오는 길에 다른 책을 선택하려 한다. 

미리 100권의 책을 훓어보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책 제목을 읽어내려간다. 



100. 곰이야기

99. 모짜르트 No.2

98. ??


베토벤은 없었다. 그렇다고 모짜르트를 고를 수도 없었다. 

100번째 책에 궁금증이 생겼다. 살짝 펴보니, 회색빛 종이재질에 한글로 적혀있는 것이 국악과 관련한 글이었다. 

국악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아는 것도 좋겠다 싶어 얇고 노란색 재질의 오래된 그 책을 집어든다. 

그 책이 전시되어 있는 쇼윈도 안 쪽의 자그마한 가게 안에는 스님이 앉아계셨다. 

이 책 빌려가서 읽어가도 될까요? 100번째 책을 제가 고르려고요~

했더니 스님이 흔쾌히 빌려주신다. 


#2. 공항 내부

장면이 바뀌어서 공항내부 안에서 길을 헤매고 만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선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공터에는 박스가 펼쳐진 상태로 오목하고 솟아 올라와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누워있다. 

그들은 떠나려해도 아직 못 떠나는 여행객들인가 싶다.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내려가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서서 거꾸로 올라가려하지만, 올라갈 수 없다. 

그 옆 난간이 있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역으로 올라선 다음, 그 난간을 부여잡고 다시 올라가려 애쓴다. 


다시 장면이 바뀐 후, 알던 친구가 내 옆에서 같이 기다려준다고 한다. 

나를 껴안은 그 친구는 내가 물던 연필을 덥썩 베어문다. 연필이 뭉개졌지만, 난 그걸 개의치 않아한다. 

그 친구는 계단이 있는 곳으로 이끌더니만 한적한 곳에서 머무르자고 한다. 

아직 비행기는 타지 못했다. 

그 공간으로 이동하니, 옆에 몇 몇 사람들이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옆에 있던 그 친구는 내가 물던 그 연필을 다시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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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어서 100권의 책 리스트가 등장한 것일까?

아직 떠나지 못하고 공항안에서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 걸까?

내가 물고 있던 그 연필은 무엇일까?

오늘의 꿈은 아무리봐도 내가 해석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찼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이 상태를 내가 분석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1월의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 꿈을 기록하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었다. 바로 1월 4일. 

요즘 칼 융의 자서전을 다시 읽고 있다. 

다시 읽고 있지만, 처음 읽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 이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냥 흘려보낸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의 꿈을 다시 들춰보았다. 

그 중 최근에 꾼 1월 4일날의 꿈을 꿈일기장을 통해서 다시 들여다본다.


#1. 원숭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시작된 건 지 알 수가 없다. 꿈의 시작을 알 수가 없다. 

기억나는 건 철창 안에 갇혀있던 원숭이 한 마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애를 써본다. 

그러나 그 원숭이는 내 것이 아니기에 그 주인에게 적어도 철창 밖에서라도 생활할 수 있게 목줄이라도 달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주인은 원숭이에 목줄을 달고, 원숭이는 옥상에서 끈이 묶인 채 이래 저리 돌아다녔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원숭이가 좋아했는지, 그 주인은 나의 부탁을 받고 기분 나빠했는지 아님 그냥 그리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주인 보다는 그 원숭이가 중요하다는 강렬한 인상은 받았다는 것이다. 

옥상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그 눈 한 주먹을 집어서 나의 입을 닦았다. 

(그 행동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하얀 눈이 나의 입, 나의 말을 정화하려는 듯한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숭이가 잡으려고 하던 것이 있다. 그러나 난 원숭이가 원하는 것을 맞춰야 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니 야구게임을 하고 있다. 잠시 그 야구게임에 간섭을 한다. 

나의 간섭과 실수로 공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지만 그 상황이 오히려 홈런이 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 기쁨도 잠시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테스트 할 것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고 관심도 주지 않는다. 가진 것도 없다. 그나마 00단체에 아는 사람이 있어 잠시 들른다.(현실에선 그 사무실에 찾아갈 이유가 도무지 없는데 말이다.)


#2. 어리지만 신성한 나무

그 사무실은 아까 내가 있던 옥상과 같은 곳인데, 외관만 00단체 사무실이다.

그래서 아까 있었던 원래 옥상이었던 그곳에서, 그리고 현재 있는 00단체 사무실에서 실험을 시작한다. 

화분에 몇 개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사무실에 있던 한 사람이 나를 돕는다. 

그 화분에는 이렇게 글이 쓰여있다. 

[토종나무-사철나무]

그 나무는 손바닥보다도 작다. 그러나 무성한 가지와 잎을 가진 무척이나 아름다운 나무다. 

쌍떡잎 식물이 아니라 큰 나무를 소형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형상이다. 

그 나무를 잘라서 주기에 난 다시 그걸 화분에 정성스레 심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떤 여인이 나와서 조언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이유는 자연친화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포장하는데, 그게 다 자기네가 먹을 식량을 키우는 것 아니냐, 이 나무를 이렇게 키워서는 안된다. 그렇게 자급자족, 식량으로 키워서는 안된다. 


이 나무를 키워서 성장과 치유, 신성함을 느껴야한다고 호소한다. 

그 꿈속에서 난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적어내려가며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그 여인은 이 말을 하면서 굉장히 화가 난 상태다. 어떻게 이런 취급을 할 수 있냐는 식이다. 

꿈속에서 화가 난 그 여인이 왜 화가 났을까하며 공감하지만, 그 화를 이해할 순 없었다. 

자급자족때문에 화가난 것일까? 식량 또는 먹는 게 왜 그리 화 낼 일인가? 인간은 굶어야 하나?

그렇다면 '신성함'이란 무엇인지, 치유란 무엇을 말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묻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곳을 떠난다. 

다시 길을 나오는데, 유리벽과 창문에 큰 홍보지가 눈에 띈다. 

[영어+20,000원 = 카세트 테잎] 

그 문구를 보자 다시 그 사무실로 올라간다. 아까 옥상이었던 그곳 서고에서 책을 찾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의 시리즈가 보인다. 

그러나 그 책의 시리즈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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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 융의 자서전을 읽으며 이 꿈을 다시 펼쳐든 순간, 아! 하고 뭔가가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식물을 바로 나 자신을 뜻하는 것이고,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 

즉, 당장의 필요한 것들로 나 자신을 채우려하지만, 그건 나 자신의 자아를 죽이는 것이라고. 

자급자족이란 표현은 어쩌면 현실에서 필요로하는 부분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고, 

정작 나의 자아가 원하는 성장과 치유, 신성함이라는 것 찾아가는 것에 대한 목마름을 방치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도 모르는 사이 자아의 발견과 성장 무엇보다도 나의 자아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자아가 알려준 대로 그 길에 있는 듯 하다.  

잠시 공허함과 방황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이 꿈이 다시 나의 가야할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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